티스토리 뷰

힐링캠프에 작가 신경숙이 출연하여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풀어냈습니다.
글쓰는 버릇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새벽 3시부터 아침 9시까지 글을 쓰는데, 이때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의 기운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보통 잠을 일찍 자든가, 아니면 나중에 낮잠을 자야 겠네요.

 

신경숙은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합니다. 시골집에서 일만하고 있다가, 서울에 있는 큰오빠의 연락으로 서울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동남전기 주식회사에서 취직해서 일을 하면서 영등포 고등학교의 산업체 특별 학급을 다니게 된 거죠. 신경숙 학창시절이 참 특별하네요.

 


이때가 17살(실질적으로 16살 반)이라고 하니, 당시(1979년)에는 법제도 허술해서 미성년자들도 막 고용하던 시기였죠.
그래도 다들 교육열은 엄청났던 모양입니다. 겨우 10명 모집하는데 무려 800명이나 지원을 했으니...

게다가 고등학교 다니는데 돈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네요. 하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고등학교가 의무교육과정이 아니죠.
아마 이때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부모 세대의 한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유독 높은 거 같습니다.

 


어쨌든 여고생이 된 신경숙은 아주 뿌듯합니다. 심지어 교복을 입고 고향집에 내려갈 정도였죠.
가난한 농부이면서, 슬하의 육남매를 어떻게든 대학 교육을 시킨 신경숙의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네요.

 

이때 노동조합이 막 태동되던 시기이기에, 신경숙은 회사와 동료 사이에 끼어서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신경숙은 학교를 무단 결석하고 마네요. 선생님에 의해서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지만, 벌로 반성문을 제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반성문을 본 선생님이 신경숙에게 소설가를 권유합니다.

아마 반성문에조차도 신경숙의 문학적인 소양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결국 신경숙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로 진학하고, 졸업 후 취직까지 하게 된 신경숙이지만, 소설가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못합니다. 이미 소설가로 등단한 그녀였지만, 동시에 일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쓰지 못할 상황이죠.

 


결국 신경숙은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1년동안 글만 쓰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풍금이 있던 자리였고, 30만부가 팔리면서 드디어 신경숙은 전업 작가의 길을 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신경숙은 자신의 인세 1%는 반드시 기부합니다. 그리고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네팔 아이들에 대한 선행도 끊이지 않습니다.

이번 힐링캠프의 출연동기 역시 유니세프 때문일고 고백합니다.

신경숙이 이미 고인이 된 박완서 선생의 명언을 대신 읊네요.
"본 게 죄다."
"비참을 구할 수 있는 건 사랑이다."

 

역시 대가답게 아주 짧은 말에 핵심만 담은 거 같습니다.
그런 대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네요. 다만 책과 어록만이 우리 주위에 남아 있을 뿐이죠.

 

신경숙의 말 역시 괜찮습니다.
"사람에 의해 상처도 받지만, 사람에 의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신경숙의 권유에 의해 이경규가 반강제적으로 좋은 일에 동참하네요. 성유리와 김제동 역시 마찬가지고요.

 


사실 이경규나 나머지 두 사람은 남몰래 선행을 많이 한 연예인중의 한명이죠. 일부러 웃기려고 분위기를 그렇게 잡았지만, 신경숙이 일부러 권유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같이 동참할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에 선행으로 마무리한 힐링캠프, 오랜만에 몸과 마음이 전부 힐링되는 거 같았습니다.

.. ..

댓글
댓글쓰기 폼